감상/드라마2007. 1. 28. 23:02

일본판 <하얀거탑>의 자이젠 고로 & 바그너 Tannhäuser - Overture

**일본판 <하얀거탑>에 대한 포스트이지만, 한국판 <하얀거탑>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판을 보지 않으신, 한국판 <하얀거탑> 시청자들은 절대 읽지마세요.

일본판 <하얀거탑> 1회의 첫 장면, 한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음악을 흥얼거리며 허공을 맨손으로 휘젓고 있다. 지휘 연습? 아니다. 자신이 곧 행할 수술을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인 것. 요 녀석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자이젠 고로다. (한국판의 장준혁-김명민.)


사실 처음으로 <하얀거탑>을 보기 시작했을 때, 시작 5초만에 저렇게 밥맛없는 녀석이 튀어나와 헛짓거리를 하고 있길래 당장에 컴퓨터를 꺼버렸었다. 다른 음악도 아니고 클래식을 흥얼거리며, 게다가 눈을 감고, 게다가 가상 수술을 하고 있는, 뭔가 민망한 분위기를 풍겨대는 인물을 주인공이랍시고 봐야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울컥 들어서였다. (물론, 1회만 보고나면 이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이젠 고로가 흥얼거리고 있던 음악은 바그너의 ‘탄호이저-서곡(Tannhäuser - Overture)’이다. 첨엔 참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다-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혼자서 육성으로만 흥얼거리니 말할 수 없이 어색하고 민망해보였다. 하지만, 자이젠이 지나온 성공과 파멸의 인생을 주욱 보고 있노라면 이 음악이 자아내는 비장함과 숭고함에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최종회 오프닝에서, 항상 흘러나오던 오프닝 테마가 아니라, 이 음악이 흘러나올 때의 감동이란... 휴.) 결국 최종회까지 보고난 이후,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꽤 재미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탄호이저>는 바그너의 음악극에 대한 시도가 반영되기 시작한 낭만 오페라로서, 탄호이저라는 음유시인(?-민네징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탄호이저>의 주인공인 탄호이저와, ‘탄호이저-서곡’을 흥얼거리는 자이젠 사이에는 묘한 동질적 코드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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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라는 진실된 여성과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팜므파탈과도 같은 베누스와의 육체적 사랑에 빠져들어 향락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향락의 나날을 청산하고 다시금 엘리자베트의 곁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가창대회에 참가해 육욕의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에 다른 기사들이 그를 죽이려고 덤벼든다. 다행히 엘리자베트의 간청으로 탄호이저는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로마 순례단을 따라 떠나게된다.

그러나 탄호이저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교황의 나무지팡이에 꽃이 피어야한다’는, 임파서블 미션을 부여받자 다시금 절망에 빠진다. 그의 연인 엘리자베트는 오로지 탄호이저의 속죄만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게 되고... 결국 엘리자베트의 시신을 본 탄호이저도 엘리자베트의 관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순례자들의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오는데,, 거기에 꽃이 만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탄호이저는 구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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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불쌍한 고로짱(자이젠 군, 자이젠 교수)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위와 명예에 대한 집착으로,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달려갈 수 밖에 없는) 자이젠과, 육체적 사랑에 탐닉하던 탄호이저… 물론, 탄호이저와 마찬가지로 자이젠에게도 순수한 이상이 있었다. 하얀거탑, 암센터를 설립해, 암을 정복하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그렇다면 우가이가 육욕의 대상? 하악하악)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이젠을 구원하기 위해, 사토미는 자신의 자리를 희생하며 법정에 선다. 사토미가 자신이 법정에 서는 목적에 대해, ‘자이젠을 의사로 남아있게끔 하기위해서’라고 설명했던 대목을 기억하시는가? (사실 개인적으로 일드에서 가장 가슴이 찡한 부분은 자이젠과 사토미의 그 끈끈한 관계였다... 마지막의 자이젠의 대사 -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 둘이서 같이...’ ㅠ.ㅠ흑흑, 또다시 눈물이 아니 흐를 수 없다)



그리고 탄호이저와 마찬가지로 절대 구원을 받지못할 것 같던 자이젠 역시, 죽음으로 구원받는다. 암 정복 연구를 위해 자신의 시신을 해부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물론 크게 보자면, 자이젠 또한 자신의 몸을 희생한 엘리자베트이기도 하다. 온갖 중상모략에 찌들어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의사’(아즈마 등등)라는 인물를 구원하게 만드는. 혹은 환자들을 구원하게 만드는. 아무튼 어느 쪽으로 바라보건 간에, 고로짱이 너무 불쌍타.


*PS 1 : 참고로 이 음악(정확히 말해 서곡의 초반에 흐르는 ‘순례의 합창’ 멜로디)을 히틀러가 너무 좋아해서, 나찌 ‘제3제국’의 제2국가로 썼다고 한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학살의 현장에서도 이 음악이 흐르곤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드판 <하얀거탑> 11회를 보면 자이젠은 아우슈비츠를 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죽음이 암시된다... 아이러니!(물론, 일본의 생체실험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자면 스스로에 대한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비판일지도.)

*PS 2 : 음악사 교양수업 때 듣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 바그너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면... 그는 음악극(music drama)으로 오페라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음악가다. 간단히 말해 대본과 무대장치, 음악을 하나로 결합시켜 종합 예술을 선보이려 했다는 것이다. 그를 언급할 때 항상 따라나오는 ‘라이트모티브’는 그의 음악극이 지닌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한 예다. 라이트모티브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각 인물이나 각 상황에 걸맞는 음악을 깔아주는 것을 가리키는 것. (달수's 테마 식으로 말이다.)

*PS 3 : Overture(서곡)은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연주되던 것으로, 그저 오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음악이다. 때문에 서곡은 본 오페라와 관련된 주제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탄호이저 서곡’에는 3막에 등장하는, ‘순례의 합창’이 흐르고 있으므로, 포스트에 쓴 내용이 마냥 억지는 아닌 셈이다. ^^

*PS 4 : 포스트에 걸려있는 음악은, 리스트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PS 5 :  ‘고클래식’(www.goclassic.co.kr)을 방문하면, 기타 클래식 곡을 저렴하게 합법적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수십년이 지난 명반들에는 저작권, 저작인접권이 소멸되어 있다.) 참고로 가격은 플레이 시간 10분당 150원. 음원파일은 음질 손실이 거의 없는 wav로 올려져있다. 물론, 수십년전에 녹음된 연주가 source이므로, 최근에 연주되고 녹음된 음반과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명반들.


[참고문헌&사이트]


‘서양음악사’ / 홍세원

http://www.goclassic.co.kr/webzine/viewbody.html?code=review&class=basic&page=1&group=22&number=22&keyfield=&key=

http://blog.naver.com/ad1900?Redirect=Log&logNo=30012635854

Posted by TTA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