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드라마2005. 11. 8. 13:21
김준우 집안에서 준우-영지 커플을 갈라놓기 위한 방해공작이 진행되면서, 안스럽게 영지을 바라만 보던 아버지 주현이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종영된 <비밀남녀>. 지난 18회에서 주현은 소주병 두병을 비밀무기 마냥 주머니에 감춰두고 적진(준우네 집)에 홀로 진격했다. 평소 술과 함께 세상을 관조하며 깨달은 서달구식 철학 세계와 철학교수인 준우 아버지(이정길)의 철학 세계가 맞붙는 대결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현은 "인생이란 마음대로 잘 안되지만 받은 걸 잘보면 나쁘지만은 않다"라며 인상적인 대사를 뿌리며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손바닥에 적어온 "애지욕기생"이란 문구도 인용해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이라며 준우와 영지의 사랑을 막아선 안된다고 설파했다. 여기서 주현은 다소 코믹하면서도, 아버지의 애정을 진지하게 표현해내면서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했다. '일간 스포츠'에서도 이 대목에서 주현의 대사가 네티즌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논어> 애지욕기생 :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


큰의미는 없지만, 가볍게 딴지를 걸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손바닥에 꼬질꼬질 적어온 "애지욕기생". 드라마에서 설명된 대로 논어의 한 구절로서, "사랑은 사람을 살리게 하는 것"이라 해석되어 사랑에 대한 명문구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실제로 이 문구를 블로그에 옮겨놓은 블로거들도 많고, '좋은생각'과 같은 서적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서강대의 장영희 교수도 자신의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를 인용한 바 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 논어(12권 10장) >에 나오는 "애지욕기생 愛之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이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헌데 논어 안연편에 실린 이 문구를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이런 감미로운 해석이 완전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고전의 해석에 있어서 딱 떨어지는 해석이 있겠냐만은, 적어도 앞에서 해석된 바와 같이 로맨틱한 의미는 아니다.

논어 안연편 10장에 실린 구절을 보자면,

子張問 崇德辨惑
자장이 덕을 높이고 미혹을 분멸하는 것에 대하여 묻자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공자 말씀하시기를, "충과 신을 주로 하여 의에 옮기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고 하셨다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라니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후략)
이미 그것이 살기를 바랬다가 역시 그것이 죽기를 원하는 이것이 미혹함이니라

물론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사랑하면 살고자 하고, 싫으면 죽고자 하니" 식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뒷 구절의 의미가 다소 달라지기도 한다. 게다가 의미상으로 따져보자면 '사랑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란 장영희 교수의 해석도 완전 엉터리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구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문장은 아니다. 특히 뒤에 "惡之欲其死(오지욕기사)"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시혹야(是惑也)"라고 덧붙인 점을 본다면 이 문구가 왜 들어갔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공자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혹은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는) 일반적인 사람의 본성을 미혹함을 지적하고자 했었고, "사랑이란 ~ 하는 것"과 같은 달콤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심각한 왜곡이라 매도하고픈 생각은 없다. 막말로 과거 역사에 대한 왜곡도 아닌지라 크게 상처입을 이도 없고, 세상이 혼란에 빠질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징영희 교수의 말대로 "사랑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는 (오역을 무시해도 될만큼) 사람을 미혹하게 만드는 로맨틱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TTA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