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종영된 <비밀남녀>. 지난 18회에서 주현은 소주병 두병을 비밀무기 마냥 주머니에 감춰두고 적진(준우네 집)에 홀로 진격했다. 평소 술과 함께 세상을 관조하며 깨달은 서달구식 철학 세계와 철학교수인 준우 아버지(이정길)의 철학 세계가 맞붙는 대결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현은 "인생이란 마음대로 잘 안되지만 받은 걸 잘보면 나쁘지만은 않다"라며 인상적인 대사를 뿌리며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손바닥에 적어온 "애지욕기생"이란 문구도 인용해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이라며 준우와 영지의 사랑을 막아선 안된다고 설파했다. 여기서 주현은 다소 코믹하면서도, 아버지의 애정을 진지하게 표현해내면서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했다. '일간 스포츠'에서도 이 대목에서 주현의 대사가 네티즌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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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의미는 없지만, 가볍게 딴지를 걸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손바닥에 꼬질꼬질 적어온 "애지욕기생". 드라마에서 설명된 대로 논어의 한 구절로서, "사랑은 사람을 살리게 하는 것"이라 해석되어 사랑에 대한 명문구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실제로 이 문구를 블로그에 옮겨놓은 블로거들도 많고, '좋은생각'과 같은 서적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서강대의 장영희 교수도 자신의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를 인용한 바 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 논어(12권 10장) >에 나오는 "애지욕기생 愛之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이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
헌데 논어 안연편에 실린 이 문구를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이런 감미로운 해석이 완전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고전의 해석에 있어서 딱 떨어지는 해석이 있겠냐만은, 적어도 앞에서 해석된 바와 같이 로맨틱한 의미는 아니다.
논어 안연편 10장에 실린 구절을 보자면,
子張問 崇德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후략) |
물론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사랑하면 살고자 하고, 싫으면 죽고자 하니" 식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뒷 구절의 의미가 다소 달라지기도 한다. 게다가 의미상으로 따져보자면 '사랑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란 장영희 교수의 해석도 완전 엉터리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구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문장은 아니다. 특히 뒤에 "惡之欲其死(오지욕기사)"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시혹야(是惑也)"라고 덧붙인 점을 본다면 이 문구가 왜 들어갔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공자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혹은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는) 일반적인 사람의 본성을 미혹함을 지적하고자 했었고, "사랑이란 ~ 하는 것"과 같은 달콤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심각한 왜곡이라 매도하고픈 생각은 없다. 막말로 과거 역사에 대한 왜곡도 아닌지라 크게 상처입을 이도 없고, 세상이 혼란에 빠질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징영희 교수의 말대로 "사랑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는 (오역을 무시해도 될만큼) 사람을 미혹하게 만드는 로맨틱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